상하이맛집 : 양심을 판다는 식당
어제 갔던 집을 하루 만에 또 갔다. 이번엔 둘이서, 메뉴를 더 늘려서. 그리고 사장님과 나눈 짧은 대화가 이 글의 진짜 이유가 됐다.

面庭芳 特色中餐厅 (上海首店)
중국 현지의 값싼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서 조미료 때문에 속이 더부룩했던 경험. 저가 식당은 원재료 이슈도 있어서 웬만하면 피하는 편이다. 그런데 12위안짜리 갓성비 국숫집은 못 본 척하기가 어려웠다. 못 먹어본 메뉴가 남아 있었고, 결국 하루도 건너뛰지 못하고 다음 날 또 문을 열었다.
사실 명분은 있었다. 늘 밥을 사주기로 해놓고 시간이 안 나던 마케팅팀 친구가 마침 오늘 짬이 난다고 했다. 반강제로 끌고 갔다고 해두자.
동료의 첫마디
도착하자마자 그 친구가 놀란다. 12위안 국숫집이 왜 이렇게 환경이 좋으냐고. 그럴 줄 알았다. 나도 어제 딱 그 표정이었으니까. 일단 아무 말 말고 음식부터 맛보라고 일러두었다.
앉자마자 따뜻한 차수(茶水)가 나온다. 오늘도 돈은 받지 않는다.

홍탕면 12위안, 비빔면 38위안
어제 시킨 것에 비빔면과 새우 요리를 더했다. 홍탕면은 내가, 비빔면은 동료가 골랐다. 虾籽葱油拌面 — 새우알 파기름 비빔면이다. 서로 빈 그릇에 덜어서 둘 다 맛을 봤다.
비빔면은 홍탕면보다 확실히 느끼하다. 대신 감칠맛이 뛰어나고, 묵직한 고소함이 혀를 감쌌다. 검게 튀겨낸 파가 면 위에 그대로 얹혀 있고, 그 밑으로 간장 빛 파기름이 그릇 바닥에 고여 있다. 젓가락으로 아래에서부터 들어 올려 섞으면 면 한 올 한 올에 기름이 입혀지고, 정수리에 올린 새우알 가루가 자잘하게 씹힌다. 담백함으로 밀고 가는 홍탕면과는 완전히 다른 축의 음식이었다. 둘 다 미소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집 두 얼굴. 왼쪽 虾籽葱油拌面 38위안 — 국물 대신 파기름, 위에 얹힌 노란 가루가 새우알이다. 오른쪽 苏式红汤面 12위안. 하나는 감싸고, 하나는 비운다.
그리고 비빔면 옆에는 작은 탕이 하나 딸려 나온다. 따로 시킨 것도 아닌데 닭 국물이 뚜껑까지 덮여서 나오는데, 이게 물건이다. 엄청 진하고 맛있어서, 파기름으로 무거워진 입안을 한 모금에 정리해준다.

오늘의 발견 — 흑송로 계란 대하
어제 먹은 문합채포초단과 천목순사초설채는 지난 글에서 이미 극찬했으니 넘어가고, 오늘의 새 얼굴은 黑松露蛋黄焗大虾球. 흑송로(블랙 트러플) 계란 대하다.
손가락보다 굵은 새우가 네 마리 나왔는데, 한 입 물고 나서 둘 다 말이 없어졌다. 계란과 송로버섯을 새우에 입혀 구웠는데 소스의 향이 고소하고, 겉은 바삭한데 속은 탱글한 식감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삼킨 뒤에도 트러플 향이 계속 남아 있어서, 그다음 젓가락을 늦추게 만드는 종류의 음식이었다.

국수는 또 쳔추(黑醋)를 뿌려 먹고, 마라 소스를 비벼 먹고 하다 보니 어느덧 접시가 전부 비었다.


“면은 무제한입니다”
인심 좋게 생긴 아저씨가 오시더니, 혹시 면이 부족하면 말하라고 한다. 면은 무제한이란다. 알고 보니 라오반(老板), 사장님이셨다. 너무 맛있다고 하니 기분 좋게 웃으신다.
그 김에 잠깐 스몰토킹을 하게 됐는데, 대화의 결이 생각보다 무거웠다.
얼굴에 잠깐 드리운 그늘
요즘 상하이는 경제가 너무 어렵고 경쟁이 미치게 치열한 상황이라고 하신다. 그러다 보니 가성비 있는 메뉴로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고, 결국 박리다매가 아니면 승부가 안 된다고. 싸게 해서 많이 와주고 많이 소비해줘야만 돌아가는 구조라는 이야기였다.
말끝에 얼굴에 약간의 그늘이 드리워졌다. 12위안이라는 가격표는 자신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는 뜻이었다.
内卷 — 네이쥐안
-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경쟁. 파이는 그대로인데 참가자만 늘어나, 다 같이 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버는 상태를 말한다.
- 지금 중국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 内卷이 극렬하게 진행 중이다. 특히 기존 오프라인 시장이 많이 무너지고 있고, 남은 곳들은 저가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 손님 입장에선 12위안에 이런 국수를 먹는 행운이지만, 파는 쪽 사정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그래서 왜 이 브랜드였나
사장님은 이 브랜드를 선택한 이유를 “양심을 지키는 기업”이라고 표현하셨다. 정말 좋은 식재료를 쓰고, 장인정신 있는 창업자가 만든 식당이라고 자랑하신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다.
精致하면 나중에는 소비자가 알아줄 거라고 믿는다.
精致(징즈) — 섬세하고 완벽하게 다듬어진 상태
솔직히 중식을 먹으며 화려한 느낌, 묵직한 느낌으로 경험해본 식당 브랜드는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가성비가 있으면서 동시에 정성이 들어갔다고 느껴지는 중식은 정말 간만에 만나는 듯하다. 틀에 박혀 있지 않았고, 보는 맛과 입맛 어느 쪽도 포기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먹는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식당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창업자의 철학, 바이두에서 찾은 것
궁금해서 찾아보니 창업자의 철학이 이렇게 남겨져 있었다.

덧붙이자면 매장 쪽 설명도 꽤 구체적이다. 24시간 환기 시스템과 3단 정수 시스템을 갖췄고, 쓰는 기름은 전부 가정용 소형 통 기름이며, 밀가루는 무첨가. 육수는 기름이 잘 오른 토종 노계를 그날그날 새로 곤다고 한다. 어제 매장에 들어섰을 때 기름 냄새가 전혀 없었던 이유가 그제야 설명이 됐다.
언제 가면 좋은가
사장님께 자주 오겠다고 인사드리고 나왔는데, 이건 빈말이 아니다. 이미 이틀 연속으로 증명해버렸다.

양심을 판다는 말이 마케팅 문구로 들리지 않는 집을 오랜만에 만났다.
모두에게 추천한다.
